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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 기강 세우기... 한 가지 원칙으로 만 가지 일 처리한 세종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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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12-20 10:27 조회3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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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강 세우기... 한 가지 원칙으로 만 가지 일 처리한 세종의 비법

[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세종, 유능한 인재 가려 쓰고 엄정한 신상필벌로 공직 기강 세워
그물의 벼리[綱]를 들어올리면 그물눈[目] 펴지는 모습에 비유
인기영합 유혹서 벗어나 인재들이 신명나게 일하도록 만들어야


“관대하고 어진 건문제(建文帝)는 망하고, 형살(刑殺)을 많이 행한 영락제(永樂帝)가 흥한 이유는 무엇인가?” 1414년 9월 태종이 정승 조준에게 던진 질문이다. 즉위 초반 정치적 반대파를 대규모로 처형한 영락제가 대내외적으로 성과를 거두며 오히려 민심의 지지를 얻은 이유에 대한 조준의 대답은 간단했다. “건문제는 기강을 세우지 않은 채[紀綱不立] 그저 관대하고 어진[寬仁] 조처만 취했기 때문입니다.”

세밑에 태종과 조준의 대화를 떠올린 건 기강(紀綱)의 절실함 때문이다. 기강 없는 시혜는 헛된 인기 영합에 불과하며 결국 그 정치가는 물론이고 나라까지 망하게 한다는 조준의 통찰은 비단 600여 년 전 조선왕조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법률 위에 떼법이 있고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말이 대한민국에 유행한 지 오래다. LH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며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 등으로 작년부터 온 나라가 들끓었지만 나라 재산 훔치고 뇌물 받는 풍토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어디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조준의 통찰, 즉 기강 세우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한 가지 원칙으로 만 가지 일 처리하 세종의 비법은? /일러스트=박상훈

 

한 가지 원칙으로 만 가지 일 처리하 세종의 비법은? /일러스트=박상훈

 

 


 

기강 하면 공직자 기강이나 군대 혹은 특별 감찰을 떠올리는 게 요즘 세태지만, 기강이란 말에는 훨씬 깊은 뜻이 들어있다. 그물의 작은 코를 꿰어 오므렸다 폈다 하는 기다란 세로줄인 강(綱)과, 그 세로줄의 윗부분을 빙 둘러 연결시킨 굵은 줄인 기(紀)가 비유하듯이, 기강은 국가를 지탱시키는 근간(根幹)이다. 우리말로 벼리라고 불리는 기강을 가장 잘 세운 임금은 단연 세종이다. 1450년 2월 세종이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강거목장(綱擧目張)”으로 그의 국가 경영을 집약했다. 왕이 그물의 벼리[綱]에 해당하는 핵심 부분만 들어 올리면 나머지 그물눈[目]이 저절로 펴지고 접혔다고 한다. ‘그물의 벼리와 그물눈’의 비유는 ‘서경(書經)’에서 유래해 전통 시대 지식인들이 애용하던 말로, 조선왕조실록에 서른세 번이나 등장한다. 예컨대 세조(世祖)는 ‘국왕·관찰사·수령 사이의 유기적인 지휘 체계’를 강거목장의 예로 들었다.

구체적으로 세종은 어떻게 벼리 장악 능력을 높였을까? ‘한 사람을 움직여 많은 사람을 움직이고, 한 가지 원칙으로 만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세종이 벼리, 즉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운 방법으로 실록은 ‘임현사능(任賢使能) 이후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인재 쓰기’라고 기록했다. 인사, 즉 사람 쓰는 일을 잘했더니 저절로 말이 순조로워지며, 일의 체제가 바로 섰으며, 민심도 결국 돌아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종은 “인재 얻는 일이 최고로 중요하다[得人爲最]”며 우수한 인재를 구하기 위해 온 마음을 기울였다. 그런데 우수한 인재가 조정에 많이 모인다고 나랏일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우수한 인재가 최고로 많았지만, 국운이 최악으로 바닥을 친 선조시대만 보아도 그렇다. 중요한 건 인재를 가려내어 배치할 수 있는 지도자의 능력이다.

세종은 임현사능(任賢使能)에 뛰어났다. 임현사능이란 일을 기획할 수 있는 안목과 관리 능력을 가진 탁월한[賢] 인재에게 위임하고[任], 맡겨진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내는 유능한[能] 인재를 부리는 인재 경영 능력을 말한다. 가령 국방 분야의 경우, 세종은 정흠지, 김종서 등 탁월한[賢] 인재에게는 지휘권과 인사권을 통째로 위임했다. 이에 비해 최윤덕, 이천, 장영실 등 유능한[能] 인재에게는 구체적인 임무를 배당해 일을 성취케 했다.

다음으로 세종이 잘한 것은 신상필벌이었다 인재를 움직이게 하려면 상 주고 벌 내리는 데 엄정해야 한다. 전자(역할 구분)가 인재들로 하여금 신명 나게 일하도록 하는 필요조건이라면, 후자(신상필벌)는 충분조건이다. ‘신숙주 숙직사건’에서 보듯이 세종은 일 잘한 인재들을 칭찬하고 그들에게 후한 상을 주곤 했다. 하지만 잘못한 관리를 처벌하는 데는 서릿발같이 엄격했다. 지방 발령을 꺼려 병들었다고 거짓말한 조극관을 전라도에 유배 보냈다. 국왕 비서실장 조서로의 간통 사실이 확인되자 즉시 그를 파직하고 경상도로 귀양 보냈다.

2023년은 선거 없는, 그래서 정치와 정책 수립에서 인기 영합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매우 드문 해다. 나라 벼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다. ‘임현사능 이후 신상필벌의 인재 쓰기’로 세종시대 인재들이 신명 나게 일했듯, 국가나 기업, 그리고 나라 곳곳에서 인재들이 신바람 나게 일하는 출발점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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