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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대학교 교수 이재호_사회통합형 대북정책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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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12-21 22:27 조회7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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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_사회통합형 대북정책을 모색할 때다 자료입니다.  

 

사회통합형 대북정책을 모색할 때다

 

동신대학교 교수 이재호

 

아주 쉽게 얘기해보자. 대북정책을 놓고 대립과 갈등이 심각하다. 한 쪽에선 대화를 외치고, 다른 한 쪽에선 안보를 강조한다. 일명 대화파(자주파)대화를 반대해? 그럼 전쟁하자는 거야?”라고 을러대고, 안보파(동맹파)북핵 앞에서 대화만을 고집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반발한다. 양측 간 이런 대립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집권(1998220032)과 함께 제시한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의 등장으로 인해 더 심화됐다.

길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듯한 햇볕이라는 이솝 우화에서 따온 햇볕정책은 기존의 다양한 대북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 중 하나일 뿐이다. 북한을 감싸 안음으로서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고, 공존·협력할 수 있는 관계로 바꾸자는 것인데 역대 정권치고 이런 정책을 취하지 않은 정권이 없다. 그 정권이 현명하고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 길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어떤 정권인들 북한과 평생 대결, 또는 대화만 하려고 했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들도 경우에 따라선 대화도 하고, 필요하다면 대결도 했을 뿐이다. 다만 햇볕정책이란 말을 생각해내지 못했을 뿐이다.

 

DJ는 이 보편적인 포용정책에 햇볕정책이란 실로 절묘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실질(實質)이 아닌 이름짓기(naming)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렇다고 평생 남북문제에 천착해온 그의 통찰력과 의지까지 폄훼하자는 것은 아니다. DJ의 그런 집념이 역사적인 20006·15 남북정상회담으로 열매 맺고, 노벨평화상으로 이어졌다. 다만 필자는 DJ로부터도 대북정책의 대원칙, 상황의 이중성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을 뿐이다.

 

상황의 이중성이란 개념을 처음 내놓은 사람은 정치학자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19941995). 그는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서 통일원 장관(19981990, 1994)을 지냈는데 노태우 때인 1988년 이 개념을 처음 언급했다. “북은 같은 민족이기에 화해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대결의 대상이므로 한편으로는 대화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안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님 말씀처럼 지당하게 느껴지겠지만 이 말이 남북관계에 관한 모든 담론의 귀결점이다. 우리는 불행히도 이런 이중적 상황 속에 놓여있기 때문에 대화와 대결(안보) 사이를 부단히 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가장 충실히 실천한 사람이 DJ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정치인이든, 학자이든, 누구든 대화만을 강조하는 사람도, ‘안보만을 강조하는 사람도 다 믿지 말라고. 그런 사람들은 여러분의 눈을 흐리게 할뿐이라고. 특히 진보 좌파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대화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들 대화 지상주의자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외치지만, 자신들의 오도된 신념이 남북관계를 얼마나 왜곡시키는지 모르거나 알면서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안보쪽도 마찬가지다. 좌파가 싫다고 안보만 강조해서 남북관계에 조금이라도 진전의 틈새를 만들 수 있겠는가. 없다. 북의 도발 분위기만을 고조시키고, 자신들은 애먼 호전(好戰)주의자로 몰릴 뿐이다.

 

이게 우리가 놓여있는 본질적 구조다. 누구도 이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중(美中)도 그럴진대 하물며 분단국 한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케네스 왈츠(Kenneth Waltz 19242013)의 말을 빌리면 신()현실주의, 또는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의 한 복판에 우리는 놓여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북정책을 놓고 나라가 반으로 갈려서 지금처럼 이렇게 피터지게 싸울 이유가 없다. 좌든, 우든 겸허하게 구조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그 공통의 기반 위에서 소위, 제도주의적 이상(理想), 곧 남북 공존, 공생, 공영의 방안을 모색하면 될 뿐이다. 대북정책은 누가 집권을 하든 이런 기본 틀에서 벗어 날 수 없고, 또 벗어나도 안 된다. 그것이 필자가 역설해온 사회통합형 대북정책의 요체이기도 하다.(졸저 사회통합형 대북정책2013년 나남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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