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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원소청심사위원장_이근우_따뜻한 교육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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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2-09 14:46 조회1,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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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교육세상을 꿈꾸며

 

 

이 근 우(인천대 상임감사, 전 교원소청심사위원장)

 

 

우리나라는 이제 어느 모로 보나 세계 10위 이내의 경제·문화·군사 선진 강국이다. 해방 직후에는 국력이 전 세계에서 거의 최하위였다는 평가와 비교하면 불과 70여 년 만에 지구 역사상 유례가 없는 눈부신 변화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들이 흘린 피와 땀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세계 어느 누구에게도 충분히 가슴 가득히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과 미래는 어떠한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최고의 저출산률은 우리 민족의 초고속의 고령화와 함께 머지않아 멸족의 운명마저 예견하게 하고, 소위 MZ 세대라 일컫는 신세대들은 사상 최고의 실업률에 미래가 없는 버려진 세대로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사회현상을 목도하며 우리가 대망의 G5 국가를 바라볼 수가 있겠는가 의문이다. 다시 한 번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전반적인 사회운영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교육 분야에 대하여 짧은 소견을 밝혀보고자 한다.

 

대학은 선발과 차별의 상징이 될 것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통해서 성장하고자 하는 모든 학생에게 그 문이 활짝 개방되어 있고 그들 바로 옆에서 친절하게 안내하고 조력하는 가이드로 인식되어야 한다. 고등교육기관 간의 경쟁과 그 교육의 성과는 졸업자들의 세속적인 성공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구적 의지를 얼마나 잘 고취시키며 그들의 학문적·인격적·신체적 성장을 위하여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했는가로 판가름이 나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학에 의해서 육성되어 진 인재들이 월급을 많이 주는 대기업에 얼마나 많이 취업했는가로 교육성과의 잣대로 삼기보다는 그들이 얼마나 인류사회 발전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로 그 성패를 가름하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대학은 그 본원적인 목적 그대로 청소년이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심신을 연마하는 장소로서 또한 성인이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더욱 충전할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우수한 대학이 전국에 고루 분포하며 그 지역 시민들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수도권에 선호하는 명문대학이 몰려 있어 사람과 자금이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블랙홀로 대학이 작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도권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이제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분산되어 지역사회가 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수도권으로 사람과 자금 등 모든 것이 집중되는 기형적인 나라로 굳어지기 전에 하루속히 과거 서울 강북 소재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이전했던 것처럼, 공공기관의 지방 분산처럼, 행정부의 지방 이전처럼 이제는 수도권 소재 명문대학들의 과감한 지방분산 이전이 현재 과잉 상태인 대학의 구조조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다음으로는, 대학은 수많은 근육질의 말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질주하는 경마장이 아니라 다양한 분아의 학문이 서로의 최상의 수준을 뽐내는 심포니 오케스트라 앙상블이 되어야 한다. 한 자녀가 한 국민이 그토록 대학에 진학해서 수학하기를 희망하는데 단지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부족하다는 구실로, 또는 수학할 학비가 없다는 이유로 대학 입학의 문호를 봉쇄하는 대학이, 또한 그런 나라가 얼마나 훌륭한 것이라고 또 얼마나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회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대학은 수학을 희망하는 청소년과 성인 누구나 취학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누구든 성별이나, 종교, 재정능력 또는 수능 점수의 차이로 입학이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 수능 등 대학수학준비 척도가 대부분 대학의 중요한 전형요소가 되는 것이 그른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대학에 의해서 모든 이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어 지는 것도 반드시 옳은 일은 아니다. 또한 현재 국가장학금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저소득 계층에게 충분한 지원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대학 학비를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 먼 미래에서는 가능한 일인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취학 희망자들의 재정능력의 차이를 감안하여 소득수준 하위 20% 이하 자들에게는 학비를 바우처 형식으로 거의 무상으로 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차별적 조건도 교육을 통한 행복추구권 추구에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과거의 편협한 세속적 경쟁논리의 사고틀에서 벗어나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진정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는 구원의 장소로 대학이 변모해야 한다. 소아적인 경쟁논리로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속박하는 것은 이제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4차 산업시대 미래의 세대를 위한 대학은 더 이상 일정 기간 동안의 대면 집합교육과 학점 취득을 통한 학위 취득 방식을 특징으로 하는 소위 영미·유럽의 17·8세기 근대식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에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최첨단 교육매체를 활용한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교육이 실험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정부의 획일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독창성과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 어느 대학을 보아도 특별한 강점이나 지향점 없이 지극히 평범한 백화점식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것을 지양하고 이제는 학자를 양성할 것인지, 취업을 목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창업자를 전문적으로 양성할 것인지, 또는 문자 그대로 자유인·교양인을 키워낼 것인지 그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전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서 대학은 양심적인 지성에 의해서 독자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대학이 정치나 종교 등 그 어떤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간섭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그들만의 안정적인 교육논리로 자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발전 선도자로서, 새로운 정치 사회 사상의 선구자로서, 또한 사회윤리를 굳건히 지키는 양심세력의 최후의 보루로서 대학은 그 역할과 그 사명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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