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회의원_이언주_대선과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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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1-10 16:05 조회1,30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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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와 2030세대, 그리고 시대교체
I. 서문
최근 대선을 앞두고 2030세대의 표심이 주목받고 있다. 이하에서는 2000년 이후 대선에서 세대투표가 어떻게 나타났고, 대선에서 2030세대의 지지를 받는 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II. 노무현과 이회창, 지역투표보다 세대투표가 승패를 가르다.
1. 2002년 대선 이전을 지배하던 지역투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대통령 선거는 1987년 치러졌고, 당시 야권이 YS와 DJ로 분열되면서 12.12.의 주역이자 군부출신인 노태우후보가 당선되었다. 그 당시에는 YS는 PK, DJ는 호남, 노태우(민정당)은 TK로 지역기반이 갈려있었고, 선거결과도 지역별로 지지하는 후보가 확연히 갈린 지역투표였다. 이후 김영삼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대선도 지역투표였다.
TK기반의 여당인 민정당이 야당인 PK기반의 통일민주당(YS), 충청 기반의 신민주공화당(JP)과 합당함으로써 호남 대 비호남의 지역구도가 형성되었고, 인구가 적은 호남지역이 고립됨으로써 선거는 당연히 김대중후보에 대한 김영삼후보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이후 1997년 대선에서는 DJ김대중후보가 지역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JP김종필과 연대, DJP연합을 이룸으로써 호남과 충청이 손을 잡고 영남(민자당)을 이긴 셈이다.
2.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후보를 승리로 이끈 세대투표
...정권교체보다 강한 구도, 기득권교체로 선거구도를 바꾸다.
2002년 노무현후보와 이회창후보가 격돌한 대통령선거에서는 세대별 득표가 승패를 결정지었다. 지역투표가 세대투표로 전환된 것이다. 방송사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유권자 연령대별 후보득표율을 분석해 보면, 노무현후보는 2030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회창후보는 50대 이상에서 지지를 받았는데 특히 60대 이상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2030세대에서는 노무현 대 이회창의 득표율이 거의 과반에 달할 정도로 노무현을 지지하였는데 이렇게 2030세대의 열광적 지지가 노무현현상과 노무현돌풍의 진원지가 되었던 것 같다.
* 2002년 대선 유권자 연령대별 후보 득표율(방송사 출구조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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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86세대와 88올림픽 이후 세계화와 개방의 시대에 대학을 다니고 사회초년생이었던 X세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열풍에 광란의 청춘을 보낸 대학생 등은 2002년 대선 당시 2030세대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민주화 이후 봇물 터지듯 밀어닥치던 자유와 개방의 사회풍조를 만끽하였는데, 이러한 자유와 세계화의 분위기는 한일월드컵의 붉은악마의 응원전과 극적인 4강진출, 마치 해방구를 연상케하는 가두행진을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벌이면서 극대화되었다. 한편, 1997년 IMF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들 2030세대는 기득권에 반감을 갖고 특별한 배경이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기득권교체의 열망은 대선초반 정권교체의 열망에 가려져 있었으나, 2030세대의 열광적 지지를 업은 노무현 바람으로 인해 대선의 주요구도로 부상하였고, 막판으로 갈수록 노무현후보가 치고 올라가면서 기득권교체의 구도가 지배하게 되었다.
X세대가 2030세대였던 2002년 대선 당시, 상고출신으로서 기득권과 싸워온 노무현후보의 인생이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와 대법관과 감사원장이라는 고위직 출신인 이회창후보와 종종 비교되었다. 노무현후보는 어려운 집안에 상고 출신으로 어렵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로서, 인권변호사로서 불의에 항거하다가 정치에 입문했고, 이후 3당합당을 거부하여 배고픈 야당생활을 하면서 지역주의정치 타파를 내걸며 정치기득권과 싸워왔고, 5공 청문회 등 정의로운 의회활동으로 인해 기득권과 싸우는 이미지를 얻었다. 대선 당시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내세운 노무현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특히 젊은층 그중에서도 특별히 물려받을 것 없는 흙수저출신 화이트칼라들과 노동자계층 블루칼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으며 그들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당시 IMF로 몰락한 집안으로 인해 어머니의 병원비, 동생의 등록금, 밀리는 월세 등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으며 좌절에 빠져있던 나와 동생들은 당시 노무현후보의 삶과 주장을 들으며 뭔가 희망을 보는 듯 느낀 게 사실이다. 당시 30살을 갓 넘긴 사회초년생이었던 내 주변에도 많은 젊은 전문직이나 화이트칼라들이 직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노무현후보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가 주장한대로 반칙과 특권, 권위가 사라진 자유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노무현이란 인물에 대한 호감과 신나는 선거캠페인의 열기가 너무나 강렬해서 대선 초반을 지배했던 김대중정권의 비리나 정권교체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관심사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만큼 그 열기는 어마어마했는데 노무현후보를 지지하던 2030세대는 당시 이회창후보를 지지하던 부모세대와 말다툼을 하곤 했다.
2000년대 초반은 젊은이들 사이에 천리안 등 온라인을 통한 채팅이 활성화되고 있던 시점이라 온라인공간을 통해 노무현바람은 더욱 강렬해졌다. 반면에 이러한 최신기술에 의한 소통방식은 이회창후보의 주지지층인 60대 이상 사이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디지털공간에서의 여론은 노무현의 압도적 우세였다. 결과적으로 2030세대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던 노무현후보는 선거 막판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승부수와 결단력 등이 부각되면서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며 1위 자리를 지켜온 이회창후보를 역전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3.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후보, 노년층의 결집으로 이겼지만...
2007년 대선은, 노무현정권에 대해 보수층은 물론이고 노무현돌풍을 일으켰던 2030세대 등 지지층 내부에서도 실망이 커진 상태에서 여당의 정동영후보의 경쟁력이 워낙 떨어진 상태에서 CEO출신으로서의 유능함과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후보가 여유있게 승리했다. 이명박후보가 2030의 강력한 지지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과거 노무현대통령 때처럼 정동영후보에게 2030이 열광하지도 않았다. 선거초반부터 지지율에서 밀리던 열린우리당의 정동영후보는 당내 친노 주류층의 외면과 지지층의 사기저하로 세대 불문하고 큰 차이로 패배한다.
2012년 대선에서는, 전임자인 이명박대통령의 여러 비리의혹과 민간인사찰사건 등 민주주의 파괴사건 등으로 정권교체의 여론이 커진 상태에서 치러졌다. 그해 봄에 치러진 총선에서 이미 정권심판론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어 여당이 패배한 상태였고, 그러한 분위기가 대선에서도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은 정권교체가 가능할 걸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여당의 박근혜후보는 지난 대선경선에서 이명박대통령과 끝까지 치열한 경쟁을 했었고, 그 이후에도 노무현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수도이전이 이명박정권에 들어서 철회되자 반대입장에 서는 등 “여당 내 야당”의 역할을 해 왔던 터라 “박근혜후보의 당선도 정권교체다”라는 주장이 먹히고 있었다.
당시 후보별 득표율을 지역별로 보면, 박근혜후보가 문재인후보를 호남과 서울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하였다. 전통적 선거구도인 호남고립의 지역구도가 두드러졌고, 보수-진보 진영간 영호남의 대립이 여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박정희향수가 불러낸 전통지지층 즉 노년층의 결집이었다. 박근혜후보는 50대 이상의 유권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당시 대통령선거를 평가한 많은 사람들은 투표일 오후가 되자 투표소에 60대 이상 노년층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이명박정권이 다소 중도성향의 입장을 취하면서 진보진영의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였고, 광우병사태 등 많은 사안에서 민주당의 공세에 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보수층 내에 강력한 보수 정체성을 희구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던 원인도 있었다.
2012년 대선 유권자 연령대별 후보 득표율 (방송사 출구조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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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흔들리는 국정동력...국정농단, 촛불집회, 대통령탄핵
... 분노한 2030, 문재인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
박대통령 주변에는 소위 ”진박 감별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 주변에 충섬심을 과시하며 호가호위하는 자들로 인해 점차 국정혼란은 심해졌고,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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