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인 학생 (일본 와세다대학교 한국인 학생회 총학생부회장) / 재외국민 관리를 위한 제언(육첩방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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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9-21 09:05 조회4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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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대한민국 헌법의 제1장 1조 2항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2조는 어떤 내용일까. 1등, 혹은 1번이 아니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우리 헌법 2조의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이 정하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 누군가에게는 낯설 ‘재외국민’은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에 90일 이상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뜻한다. 2년마다 발표되는 재외동포청의 재외동포 현황조사 기준 지난 2021년까지 약 250만 명의 재외국민이 영주권자, 일반체류자, 유학생 신분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략 대한민국 총인구의 5%를 차지하고 있는 재외국민은 국적포기자, 한국계 외국인, 혹은 교포 2세나 3세처럼 외국의 시민권을 취득한 ‘재외동포’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단순히 외국에 영주 중인 국민을 가리킨다.
필자는 10년 전부터 현재까지 두 국가에서 영주하며 재외국민으로 살아왔다. 청소년기에 타의로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의로 혼자 타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는 비교적 한인 동포가 많은 나라에 거주 중인 덕에 차별이나 정체성 문제 등을 고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여전히 재외국민 그리고 유학생으로서 경험하는 어려움이 존재하기에 단편적으로나마 나누어 보고자 한다. 또한 어려움 못지않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우받거나 편안하게 지낸 기억 역시 가득한데, 그러한 점 역시 본 글에서 함께 공유하며 자국에 대한 감사와 희망을 나누고자 한다.
재외국민으로 살아가며 경험하는 장점이자 단점은 대한민국에 대한 타국의 시선과 인식의 결과를 그대로 체감하며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해외에 나온 2013년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비비고 만두와 같은 한국 식품이 막 외국에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특정한 상품이나 작품이 한국이라는 배경과 함께 떠오르는 일이 간혹가다 있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주목받거나 K-POP, K-Food, K-Drama 등의 장르 자체가 주류로 여겨지지는 못했던 시기였다. 한국인이라는 걸 설명하고 지도에서 찾아 알려줘야 하던 그때와 달리,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강한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여느 때보다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국가로 거듭났다.
같은 국적으로 얽혀 오히려 개개인의 다름을 쉽게 존중 받을 수 있는 내국인 사회와 달리, 소속된 곳이 없는 외국인은 한 사람 혹은 국가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쉽게 일반화되고 집단화된다. 이러한 점에서 트렌디하고 화려한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 중인 2020년대의 대한민국은 재외국민 입장에서 반길 만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K-POP 그룹의 가수도 K-Drama 속 배우도 아니지만 단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환영받고, ‘니하오 你好’, ‘곤니치와 こんにちは’만 들리던 과거와 달리 외국인의 ‘안녕하세요’가 익숙해졌다. 이러한 변화와 혜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처럼 높은 시민의식과 문화를 유지하도록 국내외로 노력한다면, 대한민국 영토 외에서도 국적만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현태가 이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편, 높아진 국격과 별개로 재외국민이자 유학생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재외국민은 앞서 언급한 국적포기자와 달리 특정 기간 이후 대한민국으로 다시 귀국하여 생활할 가능성이 있는 국민을 지칭한다. 금수저, 검은 머리 외국인, 특권층 등으로 설명되는 이미지와 달리 다수의 재외국민 유학생은 어릴 적 혹은 청소년기에 타국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국인과는 다른 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해 취업 시기가 되면 내국인 우선주의와 비자 문제 등으로 귀국한다. 이렇게 귀국한 재외국민 자녀는 오랜 해외 체류 기간 탓에 금융, 복지, 역사 등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것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약 12년에서 16년간 쌓을 수 있는 인간관계 역시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 흔히 유학의 장점으로 꼽는 외국어 능력과 해외 경험으로 메우기에는 다소 큰 모국에서 시간과 경험의 공백이 생겨버린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귀국 후 몇몇은 12년간 타국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듯한 경험을 한다는 사실이다. ‘제3문화 아이들’이라는 표현처럼 모국인 대한민국에도, 거주했던 타국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재외국민은 분명 존재한다. 한국어가 어눌하거나, 비슷한 경험을 하지 못했거나, 혹은 외국에서 살았었다는 사실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 다시 적응하지 못하고 본래 거주했던 국가로 돌아가는 경우도 간혹 보인다. 개개인의 능력이나 배경과 관련 없이 국민의 의무를 다해왔던 국민이라면 언제든 고국으로 돌아와 삶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와 관련된 지원이나 인식이 아직은 미흡하게 느껴진다.
필자는 정부에게 재외국민, 특히 유아기부터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유학생을 도울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만 9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기본법에 의해 청소년으로 규정되는 재외국민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고 안내해 주길 제안코자 한다. 이는 어릴 적부터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사람과 관계를 깊게 맺지 못하는 학생들을 서로 연결해 주고 재외동포로서 소속감을 느낄 구심점이 되어줄 것이다. 둘째, 온라인 자료나 방학 기간에 국내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 및 주민등록절차, 국민의 기본 의무 등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에 대한 무료 교육을 제공해 주시기를 제안코자 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교육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재외국민은 이에 대해 거의 제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어려움인 재외국민의 정체성 확립과 한국 사회 적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의 생활과 경험이 주는 이점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동시에 정부가 그러한 이점을 가진 재외국민이 대한민국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면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국내외 국민이 서로의 다양한 배경을 인식하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어울리도록 정부가 앞장서 준다면, 추후 대한민국은 국경을 넘나들며 더욱더 빠르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과 국민이 함께 성공하고 더 나아지는 것만큼 재외국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도 없기에, 재외국민 역시 본인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언제든 자국민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국민이 평등하고 동등해야 하듯, 국내와 국외 국민도 함께 어우러져서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길 희망해 본다.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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