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개헌,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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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11-04 15:54 조회4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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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 개헌,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
1948년 7월 전문과 본문 총 10장 130조로 구성된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제정·공포된 이래, 지금까지 9차례의 개헌이 있었다. 제헌헌법이 제정된 이후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우리는 평균 8년에 한 번꼴로 개헌을 했던 셈이다.
주요 개헌 사례를 잠깐 살펴보면, 먼저 이른바 ‘발췌개헌’으로 알려진 1952년 1차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와중에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이뤄졌다. 1954년 2차 개헌은 ‘사사오입’이라는 말로 더 유명한데, 대통령의 3선 제한 철폐가 주요 골자였으며, 1972년의 7차 개헌은 악명 높은 ‘유신헌법’의 선포였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헌법 개정의 필요성보다는 권력자의 정권 연장을 위한 도구로 개헌이 이뤄진 사례들이었다.
마지막 개헌은 달랐다. 이전까지 8차례의 개헌 중 5차례가 권력자의 정권 연장을 위한 도구였던 반면, 9번째인 마지막 개헌은 군사독재에 맞선 국민이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쟁취한 산물이었다. 1987년 10월 국민투표에서 93.1%라는 압도적 찬성을 얻어 공포된 현행 헌법은 제헌국회 이후 최초로 여·야 합의에 의한 개헌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현행 헌법도 개정된 지 35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무려 강산이 세 번 반이나 바뀔 동안 헌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그 폐해와 부작용도 적지 않다.
1987년 6월 이후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90년대 후반에는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며, 21세기 들어서는 촛불혁명을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가파르게 민주화가 진행됐다.
경제적으로도 눈부신 성장을 통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사태와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으며,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됐다.
사회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문제가 새롭게 대두됐다. 세계화도 급격히 진행돼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국제결혼 급증으로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변모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4차산업혁명으로 요약되는 급격한 정보화도 진행됐다.
이밖에 3년 차에 접어든 팬데믹은 새로운 사회 변화를 초래했으며,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87년에 비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권력구조의 측면에서 5년 단임제의 한계와 부작용을 지적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주장이 그동안 정치권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되기는 했다. 4년 중임제 개헌,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내각제 개헌 등 대안도 다양했다.
하지만 권력구조 개편을 차치하더라도, 달라진 시대상과 사회상은 35년 전 만들어진 낡은 헌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예를 들어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이미 2019년 250만명을 돌파해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지만, 우리 헌법 어디에도 이들의 인권과 기본권에 대한 조항은 없다. 현행 헌법의 기본권 조항이 ‘인간’이 아닌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권 조항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차별 금지 사유로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세 가지만 명시하고 있는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참고로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 제21조는 “성별, 인종, 피부색, 종족 또는 사회적 신분, 유전적 특징 언어, 종교 또는 세계관, 정치적 또는 여타의 견해, 소수민족에의 소속, 재산, 출생, 장애, 연령 또는 성적취향을 근거로 어떠한 차별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차별 금지 사유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 제19조, 제20조에 명시된 양심과 종교의 자유도 문제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에 제정된 까닭에 사상의 자유가 빠져 있다. 국민의 의무와 관련해서도 현행 헌법은 모든 국민은 근로, 납세, 국방, 교육 등 4대 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근로의 의무 규정은 논리적 모순이다.
또한 납세와 국방의 의무는 몰라도 근로와 교육이 개별 법률이 아닌 과연 헌법상 국민의 의무로 명시되는 것이 타당한가를 두고 논란이 있다. 또한 ‘노동’이 아닌 ‘근로’라는 용어 역시 ‘부지런히 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보화의 급격한 진전에 따라 SNS 등 새로운 매체와 미디어가 등장했지만, 우리 헌법에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만이 적시돼 있다. 다양한 방식의 의사 표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로 확대·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밖에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하에서 제정된 현행 헌법에는 몇몇 독소조항도 여전히 남아있는데,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항과 관련해서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 국민들을 억압하는 대표적 사유로 악용돼온 만큼 삭제가 바람직하다. 또한 제21조 제3항과 제4항의‘통신·방송·신문의 설립은 법률로 정한다’,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근거로 한 언론 기능 제한 예시는 권력 등이 언론 출판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얼마 전 김진표 국회의장이 개헌 논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정치권이 다시 한번 개헌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개헌은 이제 더 이상 정치권만의 의제가 아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률이 우리 사회의 질서와 작동원리에 대한 세부 규정이라면, 헌법은 법률의 근간이 되는 기본규정이다. 35년이나 된 낡은 규범을 유지하면서, 미래의제에 대해 논의하고 미래사회로 나아가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모순이고 헛된 망상이다.
가파르게 진행된 민주화와 고도의 경제 발전, 높아진 시민 의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투명성, 공정성, 안전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포용성 등에서 여전히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1987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구감소, 고령화, 양극화, 지방소멸의 문제가 우리 앞에 직면해 있다. 개인정보 보호 및 정보 소외 계층의 정보 접근권 보장, 아동 학대 및 범죄 예방을 위한 아동 인권 조항,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의미하는 안전권 조항의 신설 등도 시대변화에 따라 반드시 헌법에 새롭게 추가돼야 할 내용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헌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인 이유이다.
박영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상임부의장 더불어민주당 을지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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